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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저작권만료소설

이무영-죄와벌 6

© thaysnphotography, 출처 Unsplash

 

죄와벌,이무영,공유마당,CC BY

6

이튿날 새벽 미사에 신부는 오직 바오로만을 위해서 기구를 올렸다. 진실로 기뻤다. 이 우주에서 가장 큰 죄악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낸 것 같은 기쁨이었다.

인간 사회에서 온갖 악을 물리치고 가장 위대한 선을 창조한 것 같은 환희였다. 신부는 자신이 갑자기 커진 것 같은 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천주의 안배에 포근히 싸여 있는 것 같다. 성총의 도움도 자기 혼자만이 독차지한 성도 싶어진다. 아우가 살아온다는 사실이 이 한 가지 선 앞에서는 이렇게도 미력한 것인가. 스스로 놀라지기도 했다.

 

'동기가 순전한 돈이었고 다행히도 피해자가 생명을 건졌고 더 다행한 일은 불구자도 되지 않았고 거기다 자수를 했고 보니 죄도 좀 가져워지겠지.'

바오로의 고해신부는 이런 타산도 해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유리한 것운 바오로가 자수를 한 일이었다. 그것도 그냥 자수가 아니라 범인이 잡힌 것이었다. 고통에 못이겨서 자백을 했다 해도 범죄는 성립이 되는 것이다. 엄연히 자백을 했고 당국도 이미 끝난 사건으로 처리해버린 때에 진범인이 자수를 한 것이다.

이 얼마나 장한 노릇이냐 했다.

'변호사도 내가 대리라…'

고해신부는 이런 결심도 했다.

 

새벽 미사를 올린 뒤로 고해신부는 집으로 가져가리라던 돈을 보자기에 쌌다. 그 길로 바오로의 집을 찾았다. 바오로의 집에는 두 번이나 가본 적이 있던 집이다. 남산동 호화로운 집들이 즐비한 비탈에 자그마한 판잣집이 있었다. 판잣집이었지만 일각 대문일망정 그래도 대문이 달려 있다.

 

"이성태(바오로)."

바오로는 교명까지를 문패에 쓰던 그런 신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역시 좋은 놈야.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서 그랬지…'

신부는 문패를 한참이나 바라다보고 있었다. 자부와 같은 애정이 샘솟듯 하는 것을 신부는 깨달았다.

 

"바오로…"

신부는 나직히 불렀다.

신부는 그제서야 '바오로가 정말 자수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정말 자수를 했는지 확인을 해보지 않고 쭐레쭐레 온 자기의 행실이 갑자기 쑥스러워졌지만 곧 그런 자신을 꾸짖었다.

'왜 나는 성직자로서 남을 의심하나? 더욱이 교우를.'

 

"바오로…"

"누구세요?"

그제서야 소리가 났다. 아직도 잠이 덜 깬 음성이다. 여성이었다.

 

"밖에 누가 왔어요?"

문이 빼꼼히 열린다.

 

"나 박 신부입니다."

"아, 신부님…"

질색을 하는 소리다. 역시 자리 속에 있었던 모양이다. 한참 만에야 바오로의 아내가 나왔다. 곱살맞게 생긴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빗장을 빼주고는,

 

"바오론 간밤 신부님한테 다녀오마구 하구 나가선 그 길루 통 안 들어왔답니다. 신부님한테 안 갔던가요?"

"왔었어."

 

"그럼 어딜 갔을까. 어디 가 또 취해 쓰러진 게로군요. 몇 시나 돼서 신부님한테 나왔던가요? 웬만한 하면 어린것이 성찮은 걸 보구 갔으니까 들어올 겐데요."

"몹시 귀여워한다지?"

 

"밉살맞아요, 너무 애 갖구 그러니까요. 저 같은 건 열 죽어두 괜찮구 저 놈만 살면 된다는 거야요. 호호호. 참, 나 좀 보게나. 좀 들어가세요, 신부님. 누추하지만."

"아냐, 가야지."

 

"그래도 잠깐만 들어가셔서 담배라두 한 대 피우고 가셔야지…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찌감치 오셨습니까?"

"과자 사갖구 왔지."

 

"아이 참, 신부님두. 좀 들어가세요."

"아냐, 나 곧 가겠어. 이것 맡아 잘 뒀다가 긴하게 쓰도록 하라구."

"뭔데요, 신부님?"

"바오로가 전에 내게 맡겼던 돈이야. 바오로를 주면 또 술먹어치울 테니까 안나한테루 직접 가져왔어. 바오로가 어쩌면 좀 먼델 갈지 모르니까 잘 챙겨둬요."

 

"옳지. 그래, 요새 툭하면 일본으루나 가볼까, 이북으루 가볼까 그랬군요."

"이북은 아냐. 내 또 올 게니 뭐 어려운 일이 있건 내게 찾아오라구, 응?"

 

'역시 훌륭한 놈이야…'

신부는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사뭇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훌륭하구말구, 훌륭해!'

 

신부는 다시 성당으로 돌아갔다. 바오로를 위해서 또 한번 기구를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것은 열시나 되어서였다.

이쯤 되면 호외가 돔직도 한 시간이다.

그러나 열시 반이 지나도록 그런 기색도 안 보인다. 시적시적 거리에 나가 보았으나 통 그런 눈치도 안 보인다.

 

'그렇지. 자수했다고 어떤 것이 진범인지 판단도 내리지 않고 발표부터야 할라구. 오늘 석간쯤엔 나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종일 성경만 읽었다.

 

그러나 석간 신문에도 자수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고 박찬재의 재판이 불원간에 있으리라는 내용의 기사가 이단으로 났을 뿐이었다. 그렇게 떠들어대던 사건도 벌써 잊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궁금해서 신문사 친구한테도 알아보았으나 별다른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그럼 사건에 관한 무슨 소식이라도 듣거든 연락을 좀 해주게나."

이렇게 부탁을 하고 언제 분관에서 전화 연락이 오는가 거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나 그날도 그대로 지나가버린다.

 

'오늘 밤에나 가려나?'

이런 생각도 했으나 이튿날 오전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대체 어찌된 셈인가.

오후에는 어떻게 된 속인가 싶어 바오로의 집을 또 찾았따. 안나는 도리어 반색을 하며 바오로를 못 봤느냐는 것이다.

 

'짜고 하는 노릇인가?'

그런 의심도 들지 않는 바 아니나 그는 금세 그런 자신을 꾸짖었다. 남을 의심하는 것도 죄인 것이다.

 

"바오롤 안 주시구 돈을 절 갖다주셔서 신부님이 친정아버지처럼 생각돼요. 정말 잘 불려서 살림 밑천을 해야겠어요. 바오로보구두 얼마동안 말씀 말아주세요."

"그러지."

 

신부는 이렇게 대답하고, 바오로가 오거든 급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어쨌든 곧 내려오도록 일러놓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돌아오니 누이가 다녀갔었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편지를 써놓고 갔다. 아무데라도 좋으니 취직을 시켜주면 싶었다는 말을 썼다가는 박박 지워버렸다. 무능한 그보다도 찬 신부 오빠에 대한 반감이 썼다가 흐린 붓끝에서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사실 부모한테는 찬 아들이었고 형제간에는 무심한 형이요 오라비였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천주의 아들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교규였다.

 

'신과 인간은 이렇게 격리되어야만 하는가?'

신부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버렸다. 신과 인간과를 한 입으로 말하는 것도 그의 관습상 허락되지가 않던 것이다.

 

이튿날도 이튿날도 바오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신문사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다. 안나라도 한번 움직한데 안나한테서조차 이렇다는 말 한마디가 없는 것이다. 바오로도 안나도 성당에까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던 것이다. 신부는 초조했다. 그는 몽유병자처럼 휘적 자기 방을 나왔다. 성당에 들러 주앞에 엎드리어 바오로를 위하여 오랜 기구를 올리는 것이었다. 주 앞에 나가니 모든 감정이 순간에 정화가 된다. 배신자에 대한 감정도 없었다. 오직 마귀한테 붙들려서 한 발짝도 헤어나지 못하는 불행한 바오로가 천주의 안배로 성총의 도움을 받고 참고해를 하여 죄 사함을 받게 되기를 기구할 따름이었다. 아우를 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이 기구를 올리는 동안 자기 마음 그 어느 구석에서도 단 한 가득이 없음을 깨닫는 기쁨이란 컸었다.

 

'바오로, 돌아오라, 천주의 품안으로…'

 

또 하루가 갔다. 신부는 더 참고 견디기가 어려웠다. 방을 나왔다. 벌써 어둡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발길은 자기도 모르게 남산 쪽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바오로는 역시 집에도 돌아와 있지 않았다. 그 대신 편지 한 장이 왔다는 것이다. 신부는 그 편지를 받아 읽었다.

 

'꼭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 시골 좀 간다. 그자만 찾는다면 곧 들어가마 - '

 

이런 내용의 간단한 편지였다. 우편국 소인은 상인천이었다.

'교사자를 찾아 함께 자수하자는 계획일까?'

그러나 그것은 무모한 짓이라 했다. 죄인은 자기의 죄만을 처리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보다도 그에게 그런 죄를 교사한 인간은 반드시 신자가 아닐 것이요, 그 어떤 중요한 - 어쩌면 정치적인 목적이 있을 것이고 보니 그렇게 만만히 자수를 할 것도 아니리라 했다.

 

"어딜 갔을까요, 신부님?"

"글쎄."

"찾아야 한다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시나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뭔 얘긴진 모르겠어두 얼마 전부터, '나두 이제 맘을 바로잡아가지구 어디 점방이나 하나 차리구 앉아야겠다. 그리구 난 밖으로 돌면서 물건 사들이구 당신은 집에서 팔구 그래서 우리 저놈이 대통령이 되게 잘 공부시켜야 한다구 - ' 그런 소릴 하더군요. '지금까지 사귄 놈들 그런 인간쓰레기하군 낼부턴 어디서 봤느냐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너무 좋아서 울구 말았었답니다."

 

"좋은 놈야."

신부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바오론 구원받을 사람이지. 오겠지, 안심해. 오건 내게 곧 기별을 해주오. 나두 또 오지."

 

"아니 신부님, 오지 마세요. 제가 연락해 올리겠습니다."

"안난 지난 주일 성당에두 통 안 나왔지? 성당엔 나와야지."

"저것이 앓아서 그랬습니다."

"웬만하건 나와요."

 

내리막길이라 그런지 올라올 때보다도 다리가 허청댄다. 신부는 곧장 자기방으로 돌아왔다. 역시 아무한테서도 연락 와 있는 것이 없다.

 

앞으로 사흘 후면 한씨 살해 미수범의 첫 공판이 있으리라는 신문 보도가 나던 날 저녁이었다.

"아직까지도 범인의 배후 관계가 전혀 밝혀지고 있지 못하나 여러 가지를 종합해볼 때 범인의 범행은 단독적 범행이 아니라 공범이 있다는 점과 이 범행 동기도 단순한 발작적 또는 감정상 대립이기보다는 그 어떤 정치적인 복선이 있다고 보여지고 있으니만큼 이번 공판을 계기로 범인도 그 어떤 중대한 발언을 하지 않을까 하여 많은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재판부 고위층에서도 이 점에 대하여 구태여 부정을 하지 않고 있다. 아직 피스톨의 출처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는 이 사건을 이렇게 공판을 서두르는 데도 그런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관측도 있다.…"

 

이 기사를 읽은 형은 처음으로 암담해졌다.

바오로는 자수를 단념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행방을 감출 리가 만무다.

'이북으로 밀항을 했나?'

이런 의심도 간다. 바오로가 북한 괴뢰의 관첩과도 접선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편지의 소인이 부산이나 군산 등지의 남쪽 항구였다면 혹 일본으로 밀항을 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인천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서해안을 타고 간첩들은 자기 집 드나들듯하고 있다는 신문 보도가 몇 번이나 국민들을 불안에 몰아넣은 직후이기도 하다.

 

'설마… 설마 바오로가…'

 

그러나 이것은 오직 그만의 희망적인 생각이었다. 바오로는 신부를 조롱이나 하듯 꼬리를 감추고 만 것이었다. 그는 신부 주변 어느 곳에서 지금 신부를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던 것이다.

또 하루가 헛되이 지나갔다.

 

이튿날 피정신공을 지도하고 이어 강론에 들어갔다. 그날의 강론 제목은 고해성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이틀 전 어떤 무명의 여성 교우로부터 이 고명에 관한 질의를 받고 있던 것이다. 자기는 일 신도로서 신부님을 가장 존경하고 또 숭배하고 있다는 수인사를 정중히 하고는, 자기는 남편이 알지 못하는 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일시적인 과오로서 저질러진 죄요, 지금은 깨끗이 청산을 하기도 했지만 양심상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첫째 남편과 천주님께 면목이 없으나 고해할 용기는 얻지 못하고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해야 하느냐 신부님께만 고해해도 좋으냐를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불행히도 나의 그 상대되는 의사는 남편과도 친한 터요, 신부님은 또 저희 남편과도 같은 교니만큼 잘 아는 터다. 고명받은 사실은 절대로 누설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불안해서 매일 벼르면서도 고해소에 나갈 용기를 못 내고 있다. 그러니 강론을 통해서 한 번 자세히 설명해주면 좋겠다 -

 

상당히 달핀인 이 문의에 대해서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필시 관면혼배나 겨우 받은 교우인 성싶다. 마침 좋은 강론 제목이기도 했다. 그 부인을 위해서보다도 그는 자기 자신에게 고명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교우 여러분과 함께 신성 불가침의 고해 비밀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부는 이렇게 강론에 들어갔다.

 

"한 말로 말해서 고해신부는 고해를 받은 사실을 이야기할 입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씀한다면 그런 인간이 어디 있으며 다른 말은 다 하면서 고해받은 사실만 이야기 못하는 입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 - 이렇게 반문하실 분도 있을 줄 압니다만 그것은 신부라는 성직의 근본을 모르는 데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의문입니다. 신부란 직책을 가진 사람은 천주님이 정하시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바 이외의 그 어떤 언행도 하지 않도록 습성을 길러온 사람입니다. 우리 성직자가 인간이 타고난 모든 욕심을 억제하고 일생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 자체의 노력보다도 이 천주님의 뜻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어려서부터 왼손만 쓰기 시작한 사람이 삼십 년간 그대로 실천했다면 나중에는 왼손밖에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왼손잡이도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천주의 안배하심에 의하여 성총의 도움을 받자와 그 거룩하신 뜻 솎에서만 살아온 것입니다. 다시 말씀하면 고해신부는 고명을 듣는 순간에 한 가지 법이 아니라 세 가지의 엄숙한 법에 지배되는 습성을 길러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는 예수께서는 성사를 세우실 때 이 고명의 신비성과 불가침과 존엄성을 말씀하시어 이의 위반이 곧 대죄임을 밝히셨고, 둘째로는 자연법이 이 고명의 신성과 존엄을 보호하고, 셋째로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우리교의 불가침의 법규입니다. 이것을 좀더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올해가 일천구백오십육년입니다. 천주께서 정하신 바 있는 이 고해성사법이 실시된 이래 일천구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에는 실로 수많은 고해신부가 또 수많은 교우들로부터 고해를 받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동서고금을 통하여 단 한 사람도 고명받은 사실을 누설한 고해신부가 없었다는 이 한 가지만 가지고도 우리는 고해의 존엄성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신부는 이야기하는 동안에 자기 자신의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음악을 듣는 그런 마음의 평화료, 그런 즐거움이었다.

 

"이런 사실을 좀더 우리가 인상깊게 하기 위해서 나는 가장 열성적이던 수도자이다가 열교자가 된 저 유명한 마르틴 루터 이야기를 - "

하다가 신부는 깜짝 놀랐다. 성당 맨 뒤 구석에서 뜻밖에도 바오로의 얼굴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말을 이었다.

 

"그렇게 열성 수도자이던 루터는 한번 교회에 반기를 들기가 무섭게 교회에 대하여 무서운 악담과 모함을 하고 다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고해성사까지도 마귀가 생각해낸 것이라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 루터가 어느 술좌석에서입니다. 루터가 술에 곤죽이 돼서 교회 욕과 천주 욕, 고해 욕 - 이렇게 함부로 퍼붓는 것을 보고 술친구들은 재미가 나서 '여보게, 루터. 자네가 전에 들은 고명 중에서 재미있던 것 하나 들려주게나. 대개 어떤 것을 고면하러 온더가?' 이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교회에 대한 반감이 컸고 그렇게까지 취한 루터도 그 말에는 사자처럼 노하여 친구를 술병으로 후려갈겼던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보헤미아의 왕후 베제슬라오 왕후의 고해신부였던 성 요안 네뽈지에노도 그랬습니다. 왕이 왕후를 질투해서 성 요안에게 왕후가 고해한 사실을 고백하라 강요했습니다. 고해신부는 물론 이것을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왕이 대노하여 고해신부를 가죽부대에 넣고 돌을 달아매어 모르다바 바다 속에다 던졌지만, 요행히도 돌이 떨어져서 시체가 떠올라 장례를 지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사백 년이나 지난 천칠백이십구년에 성 요안은 성인품에 오르게 되어 다시 이장을 했습니다만 고해 사실을 끝내 말하지 않았던 성인의 혀만은 썩지 않고 산 사람의 혀처럼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몇 가지 사실만 보아도 고해성사가 얼마나 존엄한 것인가를 알 수 있고, 이천 년이 되도록 단한 사람의 누설자가 없는 원리도 알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는 여기에서 강론을 끝맺고 단에서 내려왔다. 강론중에도 물론 그의 시선은 대부분 바오로에게 가서 있었다. 바오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듣고 있던 것이다.

한두 번 둘이 시선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바오로가 먼저 시선을 피했었다.

 

'날 찾으려나?'

신부는 단을 내려오면서도 바오로만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바오로를 만나야 했다. 그렇다고 신도들 앞에서 쫓아갈 수도 없었지만 뚫고 나갈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한 교우를 붙들고,

 

"이 바오로 날 좀 만나고 가라고 일러주시오."

이렇게 부탁을 하고는 문 쪽만 바라본다. 부르러 갔던 사람조차 나타나지를 않는다.

 

신부는 강단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교우들이 거의 다 흩어졌을 무렵 해서야 부르러 갔던 청년만이 되돌아왔다. 쫓아가니까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가더라는 것이다.

 

"내가 보잔 말은 전했나?"

"네, 들었을 겝니다."

"됐어, 그럼. 저녁에라두 내게 오겠지."

이렇게 태연히 말을 했지만 실상 그렇게 마음이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바오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했다. 돌아올 사람이라면 택시까지 타고 달아날 리가 만무다.

 

"배신자…"

신부의 입에서 비로소 이런 소리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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