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시 열흘이 지났다. 또 열흘이 헛되이 갔다.
그러나 배후 관계는 실마리도 집어낼 수가 없었다. 범인이 일체 부인했던 것이다.
다시 며칠이 지나서다. 비로소 단서를 얻었다는 신문 보도가 났다. 모 무소속의 거물급인 정치인이라는 것이었다. 정계는 물론 전국민의 신경은 다시 날카로워졌다. 그렇다면 이북 괴뢰 간첩과도 접선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공포에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거의 매일처럼 간첩이 잡히고 있었다. 상당한 거물급의 간첩도 벌써 이 달 들어서 두 명이나 체포가 되었던 것이다. 월북하려던 집단 간첩 일곱 명 일당이 서해안에서 체포가 되자 간첩단의 세포가 속속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것은 범인의 전혀 허위 진술이었음이 판명되었다. 몇몇 거물급 인물한테서는 범인의 진술을 인전할 만한 아무런 방증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며칟날 어디서 만나서 피스톨을 받았다는 진술을 기초로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당자는 그 당시 고향에 가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명백하게 성립이 되던 것이다.
이렇게 질질 끌던 어느 날 밤이었다. 범인의 형 박 신부는 피이넛을 사다놓고 진을 마시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현금 백만환 뭉치가 놓여 있다. 부실한 취직이나마 아우를 잃은 집안 살림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그꼴을 본 후로 병이 부쩍 더해져서 가래가 식도를 막는 형편이었다. 며칠 전 찾아간 큰아들을 붙들고 병든 아버지는 약을 좀 사다 달라고 애걸을 하던 것이었다. 그 약이 수면제였다.
"넌 너의 교리로써 그런 것을 죄루 알지 모르겠다만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하는 것도 죄니라. 아비두 더 살구 싶구 교리두 안다. 하지만 그건 아파보지 못한 사람의 일이다. 날 고이 잠재워다우. 빨리 천주께 보내다우. 첫째 저것들 굶는 꼴 볼 수 없어 더 견딜 수가 없다."
굵은 주름살 골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도 울고 누이도 울었었다. 신부도 울었다. 신앙도 신앙이지만 우선 가족을 살려놓고 보아야 했다. 신부가 된 순간부터 그는 가정을 떠났고 혈족과 절연을 했다. 신부는 천주의 아들일 뿐 한 아들에 두 아버지가 있을 수는 없었다. 신부는 일체의 수입을 자기 일신의 필수품 외에 쓰지 않기로 했었다. 수녀는 더 말할 것도 없었지만 신부 또한 원칙적으로는 자기의 수입을 자기 가족 생활비에 쓴다는 것은 금지되어 있던 것이다. 오직 성당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서만 쓸 수 있는 돈이었었다.
그러나 신부도 인간이었다. 오늘 백만환을 월부로 갚기로 하고 빌린 것이다. 마침 집에 붙은 판잣집 구멍가게를 집째 팔겠다던 것이다. 이것만 마련해주면 그냥저냥 찬재 댁이 꾸려가겠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은 또 한 아버지를 모시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형 신부는 동료 신부와도 만나는 기회를 되도록이면 피했다. 윤 신부가 고해를 하러 와서 부득이 한 번 만났을 뿐 이 사날째 성당에도 되도록 혼자 나갔다. 교우들한테도 실로 면목이 없다.
"살인범의 아우를 가진 신부."
자기 자신이 범한 죄나 진배없었다. 제 아우 하나 교도 못하는 형이 어떻게 많은 교우의 시범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가책이 무서운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박 신부는 또 술을 따랐다. 오십도가 넘는다는 독주 진이었다. 취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석 잔째 잔을 비우고 넉 잔째를 따라 집으로 가지고 가려는데 누가 노크를 한다. 윤 신부였으면 했다.
"누구시오?"
문을 열자니까 뜻밖에도 교우였다. 시간을 보니 열시다. 이 보오로라는, 깡패 소리는 들으면서도 성실하게 미사에 참여하는 독신자다. 기실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진도 바오로가 십여 일 전에 선사한 것이었다.
"바오로! 고맙소, 이렇게 찾아와주어서. 자, 앉으시오. 바오로가 준 술, 오늘 처음 마갤 떼구 한 잔 하는 길이오. 바오로 술이지만 자, 한 잔."
신부는 차라리 이런 속인과 세상 이야기나 하며 취하고 싶었다. 교리에 관한 이야기를 떠난 명동 이야기나 들으리라 했다.
"자, 한 잔."
"그만두겠습니다, 신부님."
바오로는 기구할 때처럼 손을 모으는 것이다.
"왜 그래, 바오로? 난 오늘 바오로와 한 잔 하구 싶은데. 한 잔 하면서 이야기도 좀 듣구! 세상 얘기가 좀 듣구 싶어졌어."
"아닙니다, 신부님. 오늘은 조용한 시간을 타서 신부님께 고해성살 받으러 왔습니다."
앉지도 않고 나무처럼 꼿꼿한 채 손을 모은다.
신부도 얼른 잔을 놓고 성직자의 자기 자세로 돌아갔다.
"신부님, 방에서 받아주실 수 없을까요?"
"성찰, 통회, 정개에 조금도 유감됨이 없으시오?"
"네."
"그럼 고명하시오. 천주님의 정하신 바요,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바오로의 고해를…"
하는데 바오로가 말을 탁 가로막는다.
"신부님, 시간은 아니지만 성당 역시 고해소에서 받고 싶습니다."
"그래도 좋고."
했다가 신부는 의심이 났다.
"이유가 따로 있소?"
"네."
"뭘까."
"여긴 너무 밝습니다."
"성찰은?"
"네…"
"통회도?"
"네."
"그럼 정개가 부족했소. 천주께 고해성사를 올리는데 밝고 어두움이 어디 있겠소. 그럴 리 없지 않소?"
"그러면 여기서 받겠습니다, 신부님!"
신부는 속으로는 의아스러웠지만 그런 내색은 할 수도 없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제의장 앞으로 가는 것이었다. 제의장 문 손잡이를 잡고서도 한참 무슨 생각에 잠긴다. 장 문을 열었다. 영대를 꺼내어 몸과 팔에 걸고 고해소에 자리를 잡으며 성호를 긋고 있다.
이러한 신부의 동작을 지켜보고 있던 바오로는 신부가 성호를 긋고도 한참이나 되어서야 신부 앞에 무릎을 세우고 십자를 그으며 고죄경을 외기 시작한다.
"오. 주 전능하신 천주와 평생 동정이신 성 마리아와 성 미가엘 대천신과 성 요안 세자와 종도 성 베드루, 성 바오로와 성인 성녀와 신부께 고하오니 나 과연 생각과 행함에 죄를 심히 많이 얻었나이다. 나 오늘 신부님께 고해하옴은…"
바오로의 고해가 갑자기 뚝 그친다. 신부는 눈을 딱 감은 채 계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바오로는 입을 딱 봉한 채 열지를 않는다. 신부는 눈을 떴다. 바오로는 처음 고해를 시작할 때의 그 자세였다.
"바오로! 계속하오."
신부의 재촉을 받자 바오로는 벌떡 일어나며,
"신부님, 저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신부님 말씀대루 정개가 미진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바오로! 그게 무슨 소리야! 죄를 지었으면 빨리 고해를 해야지. 죄란 병균과 가은 거야, 죌 짓구!"
"아닙니다, 담에 오겠습니다."
하기가 무섭게 바오로는 인사도 변변히 않고 뛰어나가버린다. 신부는 어이가 없었다. 한참이나 멍하니 섰다가 뛰어나가서,
"바오로오. 바오로오!"
몇 번이나 불러야 바오로는 대답도 않고 뛰어가버리는 것이다. 발소리까지 들리고 보니 신부의 부르는 소리가 안 들렸을 리 만무였다.
'웬일일까?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
신부는 영대를 벗어 의장 안에 넣고도 한동안이나 방 한가운데 멍하니 서있엇다.
'바오로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이상할 만큼 바오로의 행동이 마음에 걸린다.
보통일이 아닌 성싶게만 생각이 든다. 웬만한 일이란다면 이렇게 밤에 찾아오기까지 했다가 달아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또, 오겠지. 바오로는 진실한 교우니까 이렇게 죄를 짓고 괴로워한다는 자체가 그만큼 성실한 때문이다.'
신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다시 테이블 앞으로 갔다. 술병과 돈을 싼 책보가 한꺼번에 눈 속으로 파고든다. 그는 술잔으로 손을 가져갔다. 또 따랐다. 잔을 입으로 옮긴다.
아무리 먹어도 오늘만은 취할 것 같지가 않다. 취할 때까지 마시고 싶었다. 그리고 실컷 울고 싶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바오로한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불안한 며칠이었다. 돈은 준비가 되었다는 기별을 했지만 그나마 틀어지는지 누이한테서도 기별이 없다. 일이 잘 안 되는 것이라면 비싼 이자를 물고 있을 수도 없느니라 싶어 오늘 저녁에는 집에를 들러 보리라던 날 고해소에 홀연히 나타난 바오로가 실로 놀라운 고해를 했던 것이었다.
뜻 밖에도 그것은 무서운 대죄였다.
살인이었었다.
고죄경을 외는 바오로의 음성은 그대로 신음 소리였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그러므로 평생 동정이신 성 마이라와 성 미가엘 대천신과 성 요안 세자와 종도 성 베르두, 성 바오로와 모든 성인 성녀와 신부님께 나를 위하여 오 주 천주께 전구하심을 비옵나이다…"
바오로는 고해를 끝마치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울어버리던 것이다.
'바오로가…'
신부는 의외였다. 괄하기도 했고 명동을 휩쓴다고도 들었지만 심지는 고우니라 한 바오로였다.
"동기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 얼마나 소득이 있었는가?"
"천만환 받기루 했었는데 백만환밖에 못 받았습니다."
"무엇? 받다니?"
"실은 강도를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심부름을 했을 뿐입니다. 그 사람은 기어이 그를 죽일 필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자기로서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 청부를 제게로 가져온 것입니다. 처음 이야기로는 그 사람만 해치우면 돈은 요구하는 대로 주겠노라 했습니다. 그래, 막연하게 얼마든지랄 것이 아니라 아주 보수를 정하자고 해서 천만환에 정하구 우선 착수금으로서 오십만환만 받구 성사한 날 잔금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 - 아니올시다, 신부님, 다행히도 실패했습니다. 그래, 약속한 자리에 가보니 그자는 오지 않았어요. 그자가 있던 집을 찾아갔더니만 떠나구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집으로 돌아왔더니 그자가 집에다 오십만환 두고 갔더군요. 실패를 했으니까 다 지불할 수 없다는 간단한 쪽지가 돈뭉치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피해자의 이름은?"
"신부님, 신부님이 저보다 더 잘 알구 계실 겁니다. 신부님의 아우님께서 혐의를 받구 계신 바루 그 사건입니다."
이때 고해신부의 입에서 고통을 참을 때 하는 신음 비슷한 소리가 났다.
아니, 그것은 그대로 성직은 그만두고 인간에게서 교양과 지체, 모든 것을 떼어버린 때에나 낼 수 있는 그런 동물의 소리였다.
그러나 고해신부는 곧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그래서?"
"범인으로 잡힌 사람이 신부님의 아우님이시라는 것을 안 것은 신문을 보구서였습니다.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전 이렇게까지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고해자의 잘못이오. 고명한다는 것은 죄를 사함을 받는 데 있소. 누구를 위해서 자신의 죄를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사함을 받는 것이오. 어쨌든 고해할 생각을 한 것은 잘한 일이오. 그러나 고해를 했다 해서 다 죄의 사함이 받아지는 것은 아니오. 교우의 할일은 이제부터요. 지금까지의 고해 사실은 실상은 통회에 지나지 않소. 정말 고해는 먼저 신부에게 할 것이오. 동시에 법에 나아가 자수하는 데서 비로소 고해가 성립되오. 이 순서가 바뀌었던 것이오. 그러나 지금도 늦지는 않소. 그러니 이 길로 바루 집으로 갈 것 없이 경찰서에 가서 자수를 하시오. 그것만이 천주의 계시를 좇는 길이오. 자, 조금도 지제치 말고 주저도 말고 기꺼운 마음으로 자수를 하시오. 이것만이 죄를 기워 갚는 길이오. 영혼의 구원을 받는 갈이오. 자, 이 길로 가시오. 가서 자수를 하시오. 자수를 한 순간 내게 고명한 죄는 깨끗이 사함을 받게 될 것이오. 자, 가시오. 조금도 지체없이…"
"가겠습니다, 신부님…"
"고마운 생각이오. 훌륭한, 족히 영혼의 영원한 구원을 받을 훌륭한 생각이오. 꼭 가야 하오. 혼자 가기가 무엇하다면 내가 같이 가드려도 좋소."
"아니올시다. 당당히 제 발로 저 혼자 걸어가서 자수하겠습니다."
신부는 준절히 훈화를 하고 보속을 주고는 주께 감사한 마음으로 손을 들어 사죄경을 염할 때 바오로도 진슴으로 자슴을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 " 를 염하고 있었다.
고해가 끝나자 바오로는,
"신부는, 하나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제가 만일 - 아니올시다. 제가 자수한 뒤 제 가족을 좀 돌보아주셨으면 합니다. 마귀가 씌웠습니다. 지금까지 성당에 뭣하러 다녔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부님, 믿습니다."
"그건 염려 마오. 성당에서 돌보리다. 그러니 안심하고 가시오. 이 길로 바루 가시오. 그러지 않으면 또 결심이 풀어지는 법이니까."
"한 시간만 여유를 주십시오, 신부님. 집에 가서 어린것들 다는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구 가겠습니다."
"아니오…"
고해신부의 말은 엄숙했다.
"이 길로 가시오, 이 길로. 집에 들르면 또 구원받을 길을 놓치오. 자수한 후면 내가 아이들과 부인까지 모시고 자주 찾아주리다."
"알겠습니다, 신부님… 그대루 가겠습니다. 저두 어린것들 자는 얼굴을 본다면 결심이 풀릴 것 같습니다. 저두 자신이 없습니다. 자식이란 똠방 다섯 살 먹은 머슴애 그것 하나뿐이니까요. 죄인의 자식이지만 영리하게 생긴 놈입니다. 귀엽기 짝이 없지요."
바오로는 눈물을 씻고 있었다. 보기 추할 만큼 얼굴이 일그러진다.
"정말 귀엽게 생긴 자식입니다, 신부님…"
"그러니까 바루 가시오."
"감사합니다, 신부님. 인제 저도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습니다."
신부는 바오로를 문께까지 바래다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바오로, 고맙소."
"감사합니다, 신부님…"
굳은 악수를 하고 둘은 헤어졌다.
역시 바오로는 귀여운 놈이니라 했다. '귀여운 놈야 귀여운…' 아우를 구했다는 기쁨보다도 몇 배나 큰 기쁨이었다. 성직생활 십 년에 이렇게 기쁜 일은 처음이었다. 신부는 돈뭉치를 보아도 마음이 괴롭지 않았다.
'내일 아침 일찍 이 돈을 바오로의 아내에게 전하리라…'
신부 자신 무거운 죄의 사함을 받은 것 같았다.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