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나는 고백한다 」 가 첫 개봉을 한다는 날은 공교롭게도 아우의 첫 공판이 있는 날이었다. 특수한 경우 이외에는 일반 극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 성직자한테는 일종의 계명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 것이 습관이 되어 영화 광고 같은 것은 챙겨본 일도 없던 박 신부의 눈에 어느 날 신문을 펴들자마자 신부의 사진이 눈 속으로 쏙 들어왔었다.
"미친 사람들. 어디 인물이 없어서 하필이면 고요히 수도하는 성직자를 끌어내더람. 악취미야. 악취미도 이만저만한 악취미가 아니지…"
일종의 불쾌감까지 났었다.
그날은 그러고 잊었었다.
그뒤 며칠이 지나서다. 내일의 강론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까 가톨릭 문학회 회원의 한 사람인 젊은 시인이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 하며 찾아왔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문학 , 국회 , 신문 ,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다가,
"참 신부님, 「 나는 고백한다 」 란 영화를 곧 할 텐데 한번 보십시오."
하고 권하던 것이다.
"유 군이나 보시오. 나는 별루 흥미가 없어…"
"전 봤습니다. 벌써 그저께 시사횔 했어요. 그래 가봤는데 참 좋아요. 참고가 되실겝니다. 신부님께두."
"유 군… 날 아직도 그런 정도로밖에 평갈 않는가? 영화를 보고 배워야 할 - "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만, 신부를 참 잘 그렸어요."
"그래, 그렇게두 좋다면 한번 보아두지."
그러고 말았었다. 아우의 사건이 터지기 며칠 전 일이었다. 그런 일에 등한한 그는 그 영화는 이미 끝난 것으로만 알고 있었더니 그때 본 광고는 예고였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이 사건이 터졌었고 그런 후로는 신문도 사회면 먼저 폈다가 덮고 하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가 「 나는 고백한다 」 라는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바오로의 고명을 받고서였다. 날마다 광고를 보아야 언제 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다가 날짜가 발표되고 보니 공교롭게도 아우의 첫 공판이 있으리라는 바로 그날이었다.
영화의 내용 이야기가 약간 신문에도 소개된 것이 호기심을 끌어주던 것이다. 마치 자기가 당하고 있는 사건이 영화화된 것처럼 일종의 흥분까지 느껴진다.
아침도 궐하고 시간 전에 재판소에 뛰어가보니 어디서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 시간 턱이나 기다리다가서야 공판이 무기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아침 겸 점심 겸, 어쩌면 저녁 겸도 될지도 모르는 식사를 하고 영화관으로 갔던 것이다. 눈에 뜨이는 복장이어서 불만했지만 신부 영화라는 점에서 사람들도 관대하게 보아주는 것 같았다. 불란서 신부도 한 사람 와 있어준 것이 어찌나 고마운지 몰랐다.
영화를 보는 동안 너무 긴장되었던 탓인지 방에 들어오니 피로가 왈칵 온다. 조갈이 드는 것 같아서 물병을 집으러 가려니 진이 눈에 띈다. 아직도 삼분의 일은 넘게 남아 있다. 손이 그쪽으로 가다가는 움칫해졌다. 바오로가 사건 이후에 사온 술을 마셔야 하는가 했다.
'그러니까 마셔야지.'
쓴 웃음이 입가에 돈다. 술도 오늘은 썼다.
'이래서는 안 된다.'
느닷 없이 이런 생각이 붕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어떻게 안 된다는 것인지 집어낼 수는 없다. 그저 모든 것이 그럴 것만 같다. 바오로의 술은 먹어서도 안 되고, 안 먹어서도 안 되고, 이러고 있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움직여서는 더 안 될 것만 같다. 사실 그렇기도 했다. 이대로 방에서 궁상만 떨고 있을 수야 있느냐? 내가 이러고 있는 이 시간에도 아우의, 피를 나눈 오직 하나뿐인 아우의 생명은 시시각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한 선이 악 앞에서 유린을 당하고 있는 이 순간에 이러고 있어 좋으냐 했다. 이러고 있는 동안에 한 선은 악 밑에서 여지없이 짓밟히고 할퀴우고 찢기고, 그래서 영원히 소멸해가는 반면 악은 허세를 부리며 살쪄가고 있는 것이다. 형은 벌떡 일어났다. 소리를 내어 잔을 테이블에 놓았다. 잘깍 소리와 함께 신통하게도 반이 짝 갈라진다. 그러나 금세 또 마음속에 부르짖던 것이다.
'아니다. 아니야. 천 번 만 번 아니다.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이대로 이 방안에 있어야 한다. 한 발짝이라도 방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대체 어디를 가겠다는 것이냐? 바오로한테? 아니다. 갈 필요가 없다. 고명을 강요하는 것은 신부의 직책이 아니다. 그러면 경찰? 경찰이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
그는 또 주저 앉고 말았다, 털퍽 -
이튿날도 바오로는 나타날 줄을 몰랐다. 물론 성당에도 안 나왔다. 모처럼 안나가 나와 있었다. 안나는 딱 잡아뗀다. 도리어,
"좀 찾아주세요, 신부님!"
이렇게 되돌라붙던 것이다.
'짠 것이 아닌가? 자꾸 하는 수작이?'
이렇게도 의심이 간다.
그러고 보니 모두가 바오로 부부가 짜고서 하는 노릇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에도 수없이 한 이야기를 편지로까지 강론 시간에 해달란 것도 바오로의 수단이 아닌가 싶어도 진다.
'제가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한테 말을 시키기 위해서?'
'편지란 것도 안나의 필적이 아닐까?'
한번 의심이 나기 시작하더니 끝이 없다.
그동안 딴청을 부리던 안나의 태도에도 하기는 수상한 구절이 도시 없지도 않다. 그만한 큰돈을 받고도 거이에 대해서는 그후 말 한마디 없다. 성당에 나오지 않는 것도 수상하다면 수상치 않을 것도 없다.
'그렇다!' 하고 신부는 부르짖었다.
'그러니 어떻다는 게냐?'
그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나가지 않았다.
그는 또 잔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튿날 아침 조간을 펴들었던 형은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소리를 쳤다. "간첩의 대거물 조원호 체포" 라는 큼직한 글자 밑에 역시 특호나 되는 성싶은 활자로, "한씨 살해 미수 사건의 부점 박의 배후 인물?"
"뭐?"
형은 아연했다.
"날로 격증해가는 간첩의 활동을 봉쇄하고자 지난 십일부터 극비밀리에 본격적인 간첩 색출에 정진한 결과 대소 네 건의 간첩단을 검거하게 되었거니와 특히 이번 체포된 간첩 중에는 북한 괴뢰의 검사를 지낸 최대 거물인 조원호가 끼여 있어…"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조원호는 남한 십대 재벌에 든다고까지 일컫는 실업가로 물산회사, 운수회사, 원양사업 등 각 기업체를 갖고 있을뿐더러 그 재산은 삼십억에 달하고 오백 명의 직원을 포용한 대사업가라는 것이다. 그는 각 은행에서도 막대한 돈을 끌어내다 쓰고 있고 경제교한으로 남한을 궁지에 빠뜨리는 동시에 각종 기밀을 전파로 북한에 보내어 신문 광고, 기타의 암호로 국회, 정부, 민심 동향 등을 수사로 타전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고도 했다.
압수된 기재로는 무전기 두 대, 기관단총 두 정, 실탄 팔백여 발, 사진기 한 대, 수류탄 여덟 개, 권총 소제 미제 각 한 정씩, 미화 이천 불.
우선 주범만은 잡았지만 배후 관계가 드러나지 않아서 재판 진행도 보류중이던 한씨 살해 미수범인 박찬재가 조원호의 직계였다는 윤곽만은 이미 포착한 듯하다는 것이니 문제는 정말 커지고 말았다.
이의 방증으로서 조원호는 정부, 정계, 재벌 등 거물급과 상당히 접근해왔다는 점과 특히 한씨가 저격을 받던 날 밤에도 조원호는 한씨집에 초대되어 약간 일찍이 돌아갔다는 사실도 드러난 데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바오로가 간첩이었거나 간첩과 연락이 있거나 한 것만은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형은 억울한 아우를 구하는 데 일루의 희망이 비쳤느니라 했다.
"살인자 바오로."
"교리의 배신자, 이단자, 모고해자."
그뿐이 아니었다. 거기에 그는 또 무서운 '간첩' 이었던 것이다.
"간첩, 살인범."
이것만으로도 바오로는 구원받을 수 없느니라 한 형이었다. 그는 자기가 적어도 선을 주장하고 악을 증오하는 인류에 공통된 일반법의 준수자라 했고, 모고해로 영성체를 한 교리의 배신자를 교법으로써 처리해야 할 권한자라 했으며, 인간 최고의 대죄인 살인행위를 인간 사회에서 근절시킬 의무와 직책과 양식을 가진 자라 했다. 아니, 또 그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의 안녕 질서를 파괴하는 일체의 비합법적 행위에 대하여 감연히 싸워야 할 국민의 한 사람이니라 했다. 이것은 미요, 선이요, 진이다. 격한 나머지 그는 이 진과 선과 미를 수호하기 위한 그 어떤 행위도 천주님의 안배시니라 착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것이 카톨릭의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나는 이것을 밝혀야 한다."
그는 이렇게 부르짖고 있다.
"너는 천주 십계와 가톨릭 법규에 반역할 셈이냐?"
천장 - 분명히 천장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는 그 소리에도 항거했다.
"그렇습니다."
"천주께서 고해의 불가침법을 정하신 지 천구백오십육 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단 한 사람의 배신자도 내지 않은 이 거룩한 법규를 깨뜨릴 생각이냐?"
이 무서운 질책에도 그는 굽히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천구백오십육 년간에 단 한 사람의 배신자도 못 났으니까 찬국에서 한 사람쯤 나도 좋지 않겠습니까?"
"요셉!"
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앉았던 의자에 벌떡 일어나며 동쪽 벽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복죄를 했다. 그 소리는 분명히 이쪽에서 났던 것이다. 벽에 걸린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의 입에서 나온 음성임이 틀림이 없던 것이다.
"주여… 성총을 베푸소서."
신부는 십자가 앞에 나아가 무릎을 세웠다.
"전능하신 천주여, 주 우리를 오늘까지 있게 하신지라, 비오니 권능으로 우리를 구하사 오늘날에 일체 죄에 떨어지지 말게 하시고 또한 생각과 말과 행위를 인도하사 주의 명을 정성으로 받들게 하시되 우리 주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소서… 천지대구 오 주 천주여, 오늘날 우리의 마음과 몸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르고 거룩케 하시며 어거하고 다스리사 네 법령과 계명을 좇아 지키게 하사 우리로 하여금…"
신부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무슨 대죄를 범할지도 모르느니라 했다.
그는 또 바오로를 위하여도 십자를 그었다.
"… 예수 참 목자 동무 잃은 양을 찾아 얻어 어깨에 메고 우리로 돌아오심을 찬미하나이다. 구하오니 예수는 이 바오로를 불쌍히 여기사 친절히 통회 개과함을 주시고 그 착한 행실로 은혜로이 사하심을 입어 천주를 즐겁게하고 성 교회를 위로하게 하소서…"
바오로를 위하여 이렇게 기구를 올리는 동안에 신부는 차차 마음의 안정이 얻어지는 것이었다. 바오로의 이름은 벌써 증오의 대상은 아니었다. 죄를 짓고도 고해를 못하는 바오로와 함께 고민하고 슬퍼해줄 수 있는 심경이 되던 것이다. 죄에 대한 중압에 못견디어 자수를 하러 갔다가도 그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되돌아서 오는 바오로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죄를 짓고도 고해를 못하는, 자수를 못하는 한 인간의 괴로움이란 형벌보다도 더 무서운 고통일 것이었다. 형벌보다도 더 무서운 고통 - 육체적 고통보다도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더 가혹한 형벌이랴.
'바오로는 악인은 아니다. 그는 내게 고해를 하지 않았느냐. 그가 자수를 못하는 것은 그만큼 마음의 고통이 주는 형벌을 받기 위해서다. 육체적 고통보다도 마음의 고통이 그의 마음을 정화시켜주고 안정시켜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역시 안타까웠다.
자칫하면 배신자에 대한 증오감에 휘감기게 되는 자신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