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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저작권만료소설

이무영-죄와벌 3

© thaysnphotography, 출처 Unsplash

 

죄와벌,이무영,공유마당,CC BY

3

 

사건이 벌어진 것은 아직 늦더위가 채 걷히기 전인 어느 날 아침이었다. 새벽 미사를 올리고 돌아와서 그날 할일을 메모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박 신부는 노크 소리만으로 외래 손님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들어오십시오."

대답을 하면서 손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방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박 신부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던가?"

 

아는 교우가 아니다. 낯은 선 사람이었지만 교우라고 다 아는 도리도 없는 지라 우선 이렇게 교우 대접을 하려니까,

 

"신부님께 좀 여쭈어 볼 것이 있어서요. 여기 좀 앉으시지요."

하고 도리어 의자를 권한다. 그때까지도 박 신부는 어느 구의 교우겠거니만 싶어 원탁자 위에 어수선히 흩어져 있는 신문 잡지 등속을 큰 테이블로 옮기고 자리를 잡으며,

 

"아침 소제도 채 못했습니다. 과히 흉보지 마십시오."

이렇게 웃으며 하는 말에도 찾아온 청년 신사는 굳어진 얼굴로,

"박찬재 씨와 신부님관 어떻게 되시던가요?"

"박찬재?"

 

박찬재라는 소리에 신부는 벌써 가슴이 철렁해졌다. 웬일인지 찬재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이 청년이 경찰관계 사람이니라 하는 것이 동시에 깨달아진 것이다.

 

"박찬재, 내 동생인데요? 누구신데, 왜 그러시나요?"

"아, 그러십니까. 역시 그렇군."

하고 혼잣말처럼 하더니만,

"나 이런 사람요. 서에서 잠깐 박찬재 씨에 대해서 여쭈어볼 것이 있어서요. 너무 일찍 이렇게 찾아와 뵈어 죄송합니다."

"원 천만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썩 유쾌한 기분은 절대로 아니었다. 시간이 이르대서는 아니다. 이 불의의 방문객이 가진 임무에 대해서였다. 그대로 자기를 찾아왔단대도 유쾌한 일은 아닐지 모르는데 동생인 찬재와의 관련이 된다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니라 싶었기 때문이다.

 

찬재와 경찰과는 그런 인연도 있을 수 있느니라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늘 불안한 중에 있던 터라 박 신부는 즉각적으로 찬재의 그 무슨 범죄에 대한 것이니라 깨달아졌다.

 

"무슨 말씀인지? 뭐 걔한테 무슨 잘못이라두 있었던가요!"

"뭘요! 대단친 않은 일이니까 안심하십시오. 뭐 좀 누구하고 박치길 해서요."

"아, 그렇습니까."

 

우선 죄명이 박치기 정도라는 데서 마음이 후련해진다. 박 신부는 찬재와 경찰과라면 좀더 큰 죄명이 아닌가 했던 것이다. 찬재는 그럴 만한 소질을 다분히 가진 청년이었던 것이다.

 

주소, 이름, 나이, 학력 - 이렇게 평범한 것을 묻고 난 현사가,

 

"평소의 언행은?"

하는 데서는 박 신부로서도 난처했다. 좌익도 아니요 그렇다고 우익도 아닌 어떤 회색 정치단체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여·야 할 것 없이 지도자들에게 대한 불만으로 '죽일 놈, 살릴 놈' 하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말을 할 수도 없거니와 신부의 몸으로서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난처한 처지다. 그래서,

 

"평소라야 집안 일로밖에는 별로 이야기하는 일이 없습니다만, 무엇을 물으시는지 요점을 말씀하시면…"

"평소에 정치라든가 정부라든가, 기타 사상적인 언행은 어땠는지요?"

"그런 얘긴 통 못 들었습니다. 내가 만나기만 하면 성당에 나오라고 야단을 치니까 잘 오지도 않지만."

이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그럼 뭐 어디 정치라든가 무슨 단체 같은 덴?"

"그런 것도 없을 겝니다. 그저 아이가 좀 성격이 괄해서 웬만 일엔 참질 못하는 단점이 어려서부터 있긴 해요. 그래서 나하고도 많이 싸웠습니다."

 

이 밖에도 최근 만난 시일과 장소, 그때의 대화, 교우 관계 - 이런 것을 꼬치꼬치 캐어물었지만 실상 박 신부도 동생을 만난 지 십여 일이나 되었었고, 그때도 병중에 계신 아버지, 역시 몸이 가볍지 못하신 어머니에 출가전인 누이 찬숙이, 저희 내외에 어린것 해서 여섯 식구나 되는 집살림 이야기밖에는 다른 얘기란 야당 지도자와 여당의 지도자 몇 사람의 이름을 들어 때려죽이느니 어쩌느니 했지만 그까짓 소리는 늘 하던 소리였고 보니 들추어 말할 이야깃거리도 못 된다.

 

"그렇습니까. 아침부터 실례했습니다."

 

형사는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구체적인 사건의 내용도, 어느 서라는 것도 밝히지 않고는 '다시 알려주마' 하고 돌아가버렸다. 없었더니보다야 못하다 해도 그만 정도의 사건인 데 오히려 다행하다 싶다.

 

'정신 좀 차려야지, 저도…' 이렇게 마음을 늦추고 방안 정돈을 하는데 찬숙이가 달려왔다. 간밤 오빠는 들어오지도 않고 새벽처럼 형사 셋이 달려들어서 온 집안을 발칵 뒤집고 수색을 했다는 것이다. 책상은 물론 백여 권이나 되는 책갈피며, 천장, 다락, 심지어 마루청까지 뜯어젖혔고 웬만한 데는 파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아니, 내겐 와서 누구하구 박치길 했다구 그러던데?"

"박치기가 뭐야요?"

"들이받았다는 말이지 뭐냐? 쌈을 한 말투던데? 그래, 뭐라고들 그러던?"

"사람을 죽였단 말만 불쑥 하곤 물어야 대답두 않아요. 집에 드나든 사람의 이름두 싹 적어가구 철 씨 이름은 안 대두 좋은데 어머니가 불쑥 대지 않아요!"

 

철이란 찬숙과 상애 관계에 있는 젊은 의사였다. 박 신부도 한두 번 만난 적이 있어 성당에도 나오겠다 했고, 착실해 보이기도 하여 저희들만 좋다면쯤 생각하고 있던 터지만 이런 판에도,

 

"철 씨가 뭐 오빠 친군가, 날 찾아온 사람이지."

하고 되뇌는 것을 듣고 있으려니 인간이란 이렇게도 모든 사고가 자기 본위인가 싶어진다.

 

"그래, 뭐 가져간 건 없구?"

"서랍 속을 그대로 폭삭 쏟아 갔으니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있어요. 책두 대여섯 권 갖고 갔구, 자꾸만 무기를 어디다 감추었는지 대라잖아요? 하두 으르딱딱대기에 우리 집안엔 무리가 이것밖에 없다구 방바닥에 굴러 있는 송곳을 집어주었죠. 그랬더니 냉큼 받았다가 홱 팽갤 치겠지."

 

누이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야 박 신부도 단순한 박치기가 아니니라 싶어졌다. 박차기로 살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박치기였다면 가택수색까지는 않았을 것이요, 더욱이 무기 운운할 리가 만무다 싶다.

 

그제서야 사건의 중대성을 깨닫고 박 신부는 분관으로 뛰어가서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는 사람 이름을 대니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는 한 독자인데 새벽에 어디 살인사건이 발생했느냐 물었더니,

 

"지금 호외가 나갔습니다."

하고 탁 끊어버린다.

 

딴 신문사에다 또 걸었더니 그 사에서는 아직 호외를 내는 중인지 두 군데서 전화 받는 소리가 다 들려오고 있다.

 

"여보시오. 여기는 독잔데요."

하기가 무섭게,

"지금 바쁘니 좀 이따가 걸어주시오."

하고 탁 끊어버린다.

 

중대한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이 중대한 사건의 주인공이 아우 찬재라고 단정하고 나니 오금이 착 접쳐진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이 사건은 다분히 정치적이란 것, 찬재가 직접 관계자라는 것이며 상대방은 절명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데 귀결이 되자 더 알아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수화기를 든 채 그는 그저 우두커니 서서 있기만 했었다.

 

이 박 신부의 추측은 불행하게도 사실에 접근한 것이었다. 전날 밤 통금 직전인 열시 사십분경, 여당의 중요 간부일 뿐만 아니라 재정 운영에 큰 뒷받침을 해주고 있던 삼일제당, 삼일방직, 삼일상사 등 삼일재벌의 주인공인 한규덕 씨의 침실에 복면을 한 괴한이 한 명이 침입, 문소리에 깬 한씨에게 불문곡직하고 피스톨 두 방을 쏘았다. 한씨가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행방을 감추었다는 것이다. 마침 그날은 한씨의 생일날로 열시 지나기까지 댄스파티가 있었다 하며, 한씨가 침실에 들어간 지 불과 십분도 못되어 이런 변괴가 생겼다고도 한다. 문 여닫는 소리를 식모도 들었지만 주인이 변소에 가는 줄로만 알았다는 것이다. 한씨는 생명이 위독하다.

 

물품에 일체 손을 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순전한 강도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 유력시 되고, 여당의 간부인만큼 정치적인 배후가 있으리라는 것도 단정할 수 있다고도 했다.

 

범인은 범행 전 내객을 가장하고 미리 어디에 잔복했다가 기회를 본 것이 분명했다.

 

사건 발생의 급보를 받고 달려간 경찰대는 유력한 용의자 한 명을 체포하였으나 수사상 기밀을 보유하기 위하여 성명, 나이, 직업 일체의 발표를 보류하고 있다.

 

― 이런 내용이었다.

 

용의자의 이름이 밝혀진 것은 그날 오후였다. 용의자가 박찬재로 박모 신부의 실제라는 것도 발표되었으나 범인은 일체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준엄한 문초를 계속하는 한편 방증을 얻기에 수사진은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이 유력한 용의자로서 등장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동 용의자가 한씨 집에서 약 천오백 미터 지점인 덕성여중 정문 앞에서 골목으로 숨다가 체포된 것이었다.

거기에다 가택을 수색한 결과 불온 문구가 수없이 나열된 일기장이 나타났고 불온 서적도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발표를 보지 못한 채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으로 들어갔다. 본인의 극력 부인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해도 방증이 될 만한 무엇 하나 발견된 것이 없던 것이다. 상당한 지능 범행으로 피스톨을 방안에 버리고 갔으나 문에도 피스톨에도 지문 하나 자국이 없을뿐더러 구두에도 헝겊 커버를 신었던지 신발 자국 하나를 발견할 수 없다. 이 범행 동기나 방법으로 보아 확실히 배후에 그 무슨 커다란 움직임이 있다는 단정이 내려졌다. 그러니만큼 수사진은 더 초조해졌다.

 

오직 하나 다행한 것은 한씨는 생명을 건질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을 뿐 한씨가 의식 회복이 되면 범인의 인상 윤곽이 나타나리라 했던 것이나 막 잠이 들다가 문 여는 소리에 놀라 눈뜬 순간에 총탄을 맞은 터라 전혀 기억에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고 보면 용의자를 달구치는 도리밖에 없다.

용의자한테 또 한 가지 불리한 것은 용의자는 군대 복무시에 사격대회에서 항상 등내에 들었다는 것, 거기에 또 체포된 지점에서 피신한 이유로서 갑자기 경관 사이드카가 달려오고 경찰 지프차가 내닫고 하니까 필시 사건이 생겼을 게고 이런 때 붙들리면 죄는 없지만 도시 성이 가시니까 어두운 골목으로 잠시 피하자던 것이라 한다. 있을 수 있는 심경이었지만 그것으로 죄가 벗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직업도 없었다. 이름도 없는 출판사에 다니다 말다 한다는 것이다. 용의자에게 한 가지 유력한 것이란 오직 그의 집이 삼청동 막바지라는 것뿐이다. 체포된 지점에서라면 용의자의 집까지 통금 시간에도 충분히 갈 수 있는 상거였던 것이다.

 

사건 발생 전 약 두어 시간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만한 재료도 용의자는 갖고 있지 못한 것이 또한 혐의를 농후케 하고 있다. 여덟시나 되어 집을 나와서는 다방에 한 번 들렀을 뿐 줄곧 거리를 헤맸다는 것이다. 불행히 다방도 늘 가는 다방이 아니었던지 레지도 마담도 전혀 본 기억이 없다는 증언을 했다.

 

사건은 날로 오리무중에 들어갈 뿐이었다. 이제 기다릴 것은 용의자의 자백뿐이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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