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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저작권만료소설

이무영-죄와벌 1

© thaysnphotography, 출처 Unsplash

 

 

죄와벌,이무영,공유마당,CC BY

 

1

 

경관이 쏜 피스톨에 범인인 교회지기가 쓰러지자 관중석에서는 벌써 의자 젖혀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화면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신부로 분장한 몽고메리 크리프트가 천천히 걸어가서 쓰러진 범인을 받쳐들고 관중의 시야 속으로 부쩍부쩍 다가올 때는 관중석에서는 어시장 그대로의 혼잡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 이회 관중들이 반도 빠져나가지 못했는데 삼회권가진 사람들이 출입구를 막은 것이다. 빨리 나가라는 듯이 벨이 요란스럽게 울어대고 있다. 십분간이라는 휴식시간도 있고 하니 길을 텄으면 순조로우련만 출입구를 막고는 서로 입심만 세우고들 있다.


"나갈 사람이 다 나가거든 들어오너라!"

"길을 틔워라! 바보 같은 자식들아!"

"내밀어라, 내밀어!"

 

「나는 고백한다」 라는 영화가 끝날 무렵의 S극장 이층의 광경이었다. 특별 요금까지 받는 영화를 감상하러 온 서울의 지성인들이 연출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뚫고 들어온 사람은 제자리를 찾느라고 또 법석이다.

이 마치 뒷박 속의 메뚜기들처럼 쑤알거리는 이층 한복판에 흡사 입상이기나 한 것처럼 움직일 줄 모르는 한 검은 그림자는 먼데서 보아도 분명 신부다. 신부로 분장한 성격배우 몽고메리의 그 철저한 표정에서 아직 완전히 해방이 되지 못한 관중의 눈에도 아직도 「나는 고백한다」 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사실 화면과 실제의 구별이 안 갔다.

 

가까이서만 보았다면 이층 신부 복장의 사나이의 표정도 몽고메리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윽고 신부는 움직였다. 이 동작이 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정말 영화 속의 신부인지 관객석의 실재한 신부인지 분간키가 어렵다. 몽고메리가 무죄 언도를 받고 석방이 되어 재판소 문 밖을 나왔을 때의 군중의 흥분하던 그 장면과도 비슷했던 것이다.

 

"으으음!" 인지 "으으응" 인지 분간키는 어려웠으나 정녕 이와 비슷한 신음 소리가 몽고메리가 아닌 실재의 신부 복장의 사나이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신부는 늘씬한 키에 나이도 사십 가까이는 되어보인다. 입구가 풀리자 신부 복장의 사나이도 군중 틈에 끼여서 문께로 밀려나가고 있었다. 아직도 화면에 미련이나 있는 듯 두어 번이나 스크린 쪽을 돌아보기도 한다.

 

이윽고 신부 복장의 사나이도 밖에까지 나왔다. 밖에 나오면 대개가 옆도 안 돌아보고 훵하니 자기 갈 길을 가는 법이건만 신부복의 사나이는 그렇지가 않았다. 신전판에 붙은 사진들을 어린아이들처럼 바라다보기도 하고, 높다랗게 붙은 간판 그림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신전 간판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신부로 분장한 몽고메리 크리프트가 우람스러운 벽과 벽 사이를 처적처적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범죄자가 교회지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성직에 있는 신부의 몸으로서 '살인 강도' 라는 어마어마한, 아니 추잡한 죄명을 써야만 하는 몽고메리였다. 그럴 것이 그는 천주의 대변인인 고해신부로서 신도의 고명을 들은 것이었다. 그는 범하지 않은 죄를 스스로 져야만 했고 성덕을 닦았다는 몸으로서 교수대에 서야만 했다. 그러나 몽고메리가 자기의 살인죄를 부정 못하는 것은 교회지기가 살인에 사용했던 피 묻은 신부복이 자기 의장 속에서 나왔대서만은 아니다. 오직 그 자신이 고해신부였기 때문이었다. 신도로부터 고해를 받는다는 것은 인간 대 인간의 한 접촉이 아니라 천주를 대신하여서였다. 고해성사는 천주의 정하신 바인것이다. 천주의 이름으로써, 천주의 성총으로써 죄를 사해주는 것이다. 천주께서는 한 번 사하신 바 있는 불행한 인간의 죄를 두 번 묻지 않으신다. 고해신부가 고해받은 신도의 죄를 입밖에 낸다는 것은 천주께서 사하신 바 있는 죄를 두 번 벌하게 되는 것이요. 이러한 고해신부의 파계는 곧 천주전능을 범하는 대죄이기 때문이다. 신부 역인 이 몽고메리와 함께 신과 인간의 틈서리에 끼여 몸부림쳐온 신부 복장의 사나이한테는 몽고메리의 뒷모습에서 그의 초인간적인 그 철저한 고뇌의 표정을 샅샅이 읽을 수 있던 것이다.

 

"으흠!"

 

신음 소리가 신부복의 사나이 입에서 또 한번 흘러나오고 있다. 겨우 그는 간판 앞을 떠나서 큰 거리로 발을 옮기는 것이었다. 거리는 이미 어둡기 시작하고 있었다. 덜 익은 밀감 빛깔의 가로등이 어둠 속에 풍선처럼 떠 있다.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에 접어든 날씨치고는 푹한 편이었지만 앙상해진 가로수에서 오는 시각은 역시 찼다. 이따금 제법 찬 바람이 한 차례씩 분수를 떨고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신부복의 사나이는 그 껑충한 목을 움츠리고 양쪽 어깨를 추썩인다. 흡사 오한이 오는 사람 같아 보인다. 혹 한기가 드는지도 몰랐다.

 

사나이는 네거리를 바른쪽으로 꺾어 퇴계로 침침한 거리로 접어든다. 서울의 심장부라면서 숫제 어둡다. 거기에 검정 복색이라 하지만 칼라만 아니면 존재조차도 선명치 않을 그런 어둠의 거리였다. 거기에 걸음새가 또한 어두운 거리에는 제격이었다. 고개를 비어꽂은 기다란 몸체가 뒤에서 보면 사뭇 능청댄다. 거기에 또 긴 옷자락이 너펄대어 히질대는 인상까지 준다.

 

가끔 자동차의 불빛이 그의 전신을 어둠 위에 부각시켜준다. 영화 「나는 고백한다」 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때의 장면을 스크린의 화면과 착각을 했을 것이다.

 

"으으응!"

 

또 한번 검은 그림자 상부에서 이런 신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잇대어 이런 기구 소리가 들렸었다.

 

"주여! 이 몸을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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