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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저작권만료소설

이무영-죄와벌 4

© thaysnphotography, 출처 Unsplash

 

죄와벌,이무영,공유마당,CC BY

4

 

용의자가 드디어 자백을 했다. 사건 발생 후 만 삼 주일 만이었다. 그러나 박 신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었다. 그는 이 사건의 진범이 자기 동생임을 벌써 단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시의 언행으로 보아서도 그러했다. 성격도 그럴 수 있는 소질이 많았었다. 고향인 안악에서였다. 찬재가 여덟인가 아홉 살인가다. 찬재는 열두 살이나 먹은 아이와 싸우다가 넉장이 되게 맞고는 그날 밤 그 아이의 집에 불을 퍼질렀었다. 가난한 집이었고 다행히 지붕만 반 가량 타서 변상만 하고 무사했지만 형과도 싸울 때는 돌이고 칼이고 마구 던지던 아이다. 군대에서도 그랬다. 중위로서 중령을 넉장이 되게 패주고 영창생활도 했었다. 어려서부터 제분에 못이기면 제 손가락을 아지끈아지끈 깨물던 아이다.

박 신부는 어느 날 하루 동생한테 성총이 내리기를 기구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러나 찬재는 더 엇나가기만 하던 것이다. 그대로 잠자코 있기나 했으면 오히려 좋았다. 그는 성직자인 형 앞에서,

 

"종교는 아편이어요!"

했었고,

 

"형은 가장 신성한 직책이나 다하고 있는 성싶을지도 모르지만 신부가 마술사와 뭣이 다르지요? 사기꾼과? 사기꾼은 한 사람만 속이지. 형은 천주의 이름을 팔아서 만인을 사기하고 있는 거야."

 

이런 찬재였다. 이런 아우였었다. 형은 아우를 버린 지 오랬었다. 아우는 마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형은 아우를 못잊어해 왔다. 신부였지만 그는 역시 형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형은 슬펐다. 슬프면서도 동생의 살인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우가 자백을 했다는 신문 보도를 본 순간 형은 슬프기는커녕 기뻤다. 당국의 알선으로 형은 두 번이나 아우한테 자백하기를 권했던 것이다.

 

두 번 다 아우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었다.

 

"형은 놈들과 부동이 돼서 단지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살인범으로 몰고 마음이 편하리다. 편할 게요. 내가 이만큼 사실이 아니란다면 형만은 믿어주어야 하지 않겠소. 형만은! 형은 천주의 대변자라니까. 난 교우는 아니지만 형이 믿는 천주 앞에 맹세를 합니다. 절대로 난 범인이 아니예요. 여덟 시에 집을 나왔어요. 울적해서, 울분에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아서… 돈도 없었소. 형이 언제 한번 집안에 보태 쓰라고 목돈 집어준 일이 있던가요? 신부는 제 부모 형제를 돌보아선 안 되오? 굉장한 법규로군. 성스런 규율이라구요? 오 년간이나 전쟁을 하구 왔으니 직업을 주오? 집엔 돈 한푼 없었소. 내가 어째서 울적지 않겠어요? 그날도 실은 형이라도 찾아가리라 나섰다가 형을 보면 골통을 깨고 싶어질까봐 참고 돌아오던 길이었어요. 그런 날 죄인을 만들어?"

 

두번째 갔을 때는 만나주지조차 않으려 들었었다. 겨우 만나더니 그대로 감정을 폭발시키어 물어뜯으려 들던 것이다. 몸이 몹시 약해져 있었다. 그 때문이니라 싶어 그날은 단념을 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완강히 자백을 거부하던 아우가 드디어 자백을 한 것이다.

 

이로써 아우는 천주님의 사하심을 받았느니라 했다. 성덕을 입고 성총이 베풀어지느니라 했다. 형은 성당으로 달려갔다. 무릎을 꿇었다. 오늘처럼 천주와 감정이 통한 기구는 일찍이 없던 것 같다.

 

"지극히 자애로우신 천주시여. 주님의 거룩하오신 계시로 악마의 자식이던 아우 깨친 바 있사와 주의 품에 돌아오게 해주시오니 그 은총 무한 감사하오이다. 제 아우 비록 아직 주의 품에 들지는 못했사오나 성총을 입사와 통회할 날이 있을 것이옵고 임조할 그 순간까지에는 반드시 천주님을 받들때 있으리라 믿사옵니다. 아우 찬재 비록 마귀에 사로잡혔사와 대죄를 범하였사오나 이제 천주께서 계시하오신 십계 중 일계만이라도 깨우치고 성총의 도움을 받아지자 몸부림치고 있사옵니다. 저의 아우 사심판정에 서옵거든 성총으로 어루만지시고 강복해주시와 성 분도 기록에 성 요안 네뽈지

에노도 되게 하옵소서."

 

형의 기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외어도 외어도 미진했다. 미운 아우였었다. 죽이고 싶은 아우이기도 했었다. 차라리 죽기나 했으면 영혼의 구원을 받느니라 한 아우였었다. 사교 사상에 물든 아우, 무신자보다도 더 밉던 이단자인 아우! 그러나 그는 신부였지만 역시 아우의 형이었었다. 이단자요, 사교자요, 마귀의 아들이었지만 역시 사랑하는 아우였다. 형은 오늘 지금서야 자기가 얼마나 아우를 미워했던가도 알겠지만 또 얼마나 사랑했었는가도 깨달아지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신부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것도 깨달았고, 신부이지만 역시 인간인 아우의 형이라는 것도 뼈저리게 깨우쳤었다.

 

"아우여! 동생아, 형을 용서해다오! 나는 천주의 아들인 동시에 너의 형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형은 오직 천주님의 아들이었을 따름이었다."

 

자기 방에 돌아온 형은 문을 잠그고 목을 놓고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시원치 않았다. 아우에 관한 속보는 거의 매일처럼 신문에 나고 있었다. 이제는 배후 관계의 추긍만이 남았었다. 배후 관계가 밝혀진다면 불똥이 어디로 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신문은 배후 관계 여하로는 정부 고위층에 바람이 불지도 모른다 했고, 여당계 신문은 또 야당계 거물급의 선이 닿지 않았나 하는 무시무시한 추측 기사를 내기도 했었다.

 

" - 한씨 저격 사건, 정계 거물급에 비화? - "

가로 일단 반의 어마어마한 타이틀은 국민들을 불안에 사로잡히게 했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아무런 근거도 없었다. 그저 그럴지도 모른다고 추측일 뿐이었다. 근거있는 소스의 기사는 못 되었었다.

 

"장난들 몹시는 한다. 아니, 신문이란 이런 수단으로밖에 팔아먹을 길이 없더람!"

이렇게 분개하는 축들도 있었다.

 

누구보다도 형이 그랬다. 신문에 대한 증오감까지도 드는 것이다.

그러나 형 신부는 체념을 했다. 배후 관계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도 아우의 죄를 덜어주기 위해서이지 형벌을 덜어주자는 데서는 아니었다. 배후 관계가 있든 단독 범행이든, 살인 기수가 아니고 미수이든 아우의 생명은 의미 없는 거나 진배없는 일이었다. 아니, 생명이 없어져야만 아우는 영혼의 구원을 받느니라 한 형이었었다. 이 기구 또한 아우에 대한 형의 극진한 애정의 표현이었다. 죄로 더럽혀진 아우의 생명이 이 세상에 남아서 더 욕되게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형의 혼란된 머리에는 형에 대한 판단도 서지 않았고, 아니 그런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형이 알고 싶은 것은 아우가 언제 천주께로 돌아와주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언제 고요한 마음으로 교리를 배워 영세를 하고 총고해를 하게 되느냐는 것만이 지금 형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생각이었다.

 

희망이었었다. 외인을 볼 때는 한낱 잠꼬대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천주의 아들이요 성직자인 형으로서는 이것이 아우에 대한 최대의 애정이었고 사랑이었었다. 지금의 형은 이밖에는 애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이외의 어떤 사랑의 방법도 형을 만족 시켜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아우여! 하루바삐, 아니 한시라도 빨리 주의 품으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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